앤트로픽이 단백질을 설계했습니다. 그게 맞는지는 트위스트가 판정했습니다
앤트로픽이 클로드로 단백질 결합체(binder)를 설계한 캠페인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표적 단백질 15개를 놓고 클로드가 스스로 후보를 설계했고, 그 설계가 실제로 표적에 붙는지는 트위스트 바이오사이언스와 어댑티브 바이오가 각각 실험실에서 검증했습니다. 두 회사는 서로 독립적으로 단백질을 만들어 시험했습니다. 계약 금액이나 협업의 범위·기간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발표 기준).
성적표부터 보면 눈에 띄는 숫자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뉴스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성적표가 아니라 역할이 어떻게 갈렸는가입니다. 설계는 AI가 이틀 만에 했고, 그게 맞는지 판정하는 일은 여전히 실험실에서만 됐습니다. 이 분업의 구조가 지금 AI 신약 분야 전체의 모양을 말해 줍니다.
무엇을 했고 무엇이 나왔나
발표된 수치는 이렇습니다(모두 앤트로픽 발표 기준). 클로드는 설계안 1,320개를 냈고, 그중 실험으로 결합이 확인된 것이 354개입니다. 표적 15개 가운데 14개에서 결합체를 얻었고, 히트율은 조건에 따라 22.6퍼센트에서 35.1퍼센트 사이로 나왔습니다. 오늘날 단백질 설계 캠페인에서 통상 10~15퍼센트가 나온다는 점과 비교하면 두 배 안팎입니다.
여기에 별도로 분석화학 과제도 붙었습니다. 외부 위탁 실험실의 원시 NMR과 LC-MS 파일을 클로드가 직접 처리했는데, 각각 23분과 19분이 걸렸고 결과는 실험실 자체 처리와 거의 일치했습니다. 순도 측정은 96.4퍼센트 대 96.33퍼센트였습니다. 문서화되지 않은 장비 제조사 파일 형식을 해독하는 일까지 포함됐습니다.
왜 하필 트위스트였나
이 협업에서 트위스트가 맡은 자리를 이해하려면 이 회사가 무엇을 파는지부터 봐야 합니다. 트위스트는 DNA 합성 화학을 실리콘 칩 위로 축소한 회사입니다. 표준 96웰 플레이트 크기(약 12.7 × 8.9센티미터)의 칩 하나에 합성 자리가 약 100만 개 들어갑니다. 웰 96개짜리 전통 방식과 자릿수가 넷 다릅니다.
속도도 계속 빨라졌습니다. 회사가 운영하는 자체 DNA 프린터는 남샌프란시스코와 오리건 윌슨빌에 여덟 대가 있는데, 100층을 인쇄하는 데 3년 전 24시간 걸리던 것이 지금은 7시간입니다(회사 설명 기준).
에밀리 르프루 CEO의 진단이 이 협업의 이유를 정확히 말해 줍니다. 이제 어려운 부분은 서열을 설계하는 드라이랩이 아니라 그것을 실물로 만들어 확인하는 웻랩이라는 것입니다. AI가 후보를 쏟아낼수록 병목은 뒤로 밀립니다.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사례가 규모를 실감하게 합니다. 연구진이 항체 후보 약 30만 개를 설계한 뒤 상위 10만 개를 트위스트로 보내 시험했습니다. 설계는 컴퓨터가 며칠이면 하지만, 그 10만 개를 실제로 만들어 붙는지 보는 일은 다른 종류의 공정입니다.
사업 숫자에도 이 흐름이 잡힙니다. 3분기 매출은 1억 1,840만 달러로 전년 대비 23퍼센트 늘었고, 그중 DNA 합성·단백질 솔루션이 39퍼센트 성장했습니다. 총이익률은 52.8퍼센트, 회계연도 2026년 매출 전망은 4억 5,600만~4억 5,700만 달러로 상향됐습니다. 르프루 CEO는 AI 관련 주문이 회계연도 2025년 약 2,500만 달러에서 2026년 약 5,000만 달러, 2027년 약 1억 달러로 늘 수 있다고 언급했습니다(실적 발표·보도 기준).
반론도 함께 놓아야 합니다
이 발표에는 만만치 않은 비판이 붙었습니다. 마틴 슈크렐리는 결과가 인상적이지 않다고 공개적으로 반박했습니다. 요지는 셋입니다. 펩타이드성 물질치고 친화도가 낮다는 것, 결합체 중에 세포 안의 표적을 겨냥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 그리고 기존 단일클론항체에서 실제로 결합하는 부위만 떼어 내도 비슷한 것을 얻을 수 있는데 무엇이 새롭냐는 것입니다.
앤트로픽 자신도 한계를 명시했습니다. 미니바인더는 표준적인 치료제 양식이 아니며 신약 개발의 첫 단계일 뿐이라는 것, 그리고 BBF-14와 말토스 결합 단백질 같은 일부 표적에서는 확인된 결합체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같은 표적에서 오푸스 4.8은 성공했는데 다른 모델은 실패한 사례를 두고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고도 적었습니다.
두 이야기를 함께 놓으면 정확한 독해가 나옵니다. 결합체를 만드는 일에서는 유의미한 진전이 있었고, 그것이 약이 되는 일까지는 아직 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구분은 앤트로픽이 클로드 사이언스로 생명과학에 본격 진입한 흐름에서 계속 따라붙을 질문이기도 합니다.
판단: 채점기를 가진 쪽에 값이 붙습니다
이 뉴스를 이 블로그에서 반복해 온 프레임 위에 올리면 구조가 선명해집니다.
앞서 자동화와 자율화의 거리에서 신약과 세포실험을 "최종 채점자가 사람의 몸과 규제인 칸"으로 분류했고, 디스커버리 루프가 머신러닝 연구부터 시작하는 이유도 거기가 채점이 가장 값싼 자리이기 때문이라고 정리했습니다. 이번 발표는 그 지도 위의 한 점입니다. 클로드는 채점이 비싼 칸에 들어갔고, 그래서 채점을 대신해 줄 회사가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판단은 셋입니다.
첫째, 프런티어 랩의 과학 성과는 외부 검증자 없이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번 발표의 신뢰도는 클로드가 아니라 어댑티브와 트위스트가 독립적으로 시험했다는 사실에서 나옵니다. AI 회사가 자기 모델의 과학적 능력을 주장할수록, 그 주장을 받아 줄 실험 파트너의 협상력이 올라갑니다.
둘째, 트위스트의 위치는 도구 공급자입니다. 회사는 자기 전략을 조력자 역할로 설명하며, 신약의 생물학적 위험은 고객이 지고 자기는 도구를 판다는 구도를 유지합니다. 이 선택이 실험 자체가 해자가 되는 구조에서 어떤 값을 받을지가 앞으로의 관전 지점입니다. 파이프라인을 직접 갖지 않는 대신, 모든 설계자의 판정을 대행하는 자리를 노리는 것입니다.
셋째, 이 협업의 실질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계약 규모도, 기간도, 앞으로 어디까지 확대되는지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확인된 것은 한 번의 캠페인에서 평가자로 참여했다는 사실뿐입니다.
지켜볼 지표는 명확합니다. AI 설계 물량이 실제 주문으로 얼마나 전환되는지(회사가 제시한 회계연도별 전망이 그대로 실현되는지), 복잡 유전자 같은 고난도 서열 처리 능력이 AI 설계물의 특성과 얼마나 맞아떨어지는지, 그리고 이번 결합체 가운데 실제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 나오는지입니다. 마지막 항목이 나오기 전까지 이 발표는 능력의 증명이지 약의 증명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