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I는 문이 아니라 계단입니다. 노동 재편은 신입 책상부터 시작됐습니다
"AGI는 오는가"와 "AI가 노동을 대체하는가"는 보통 한 묶음으로 취급됩니다. 그런데 두 질문은 답의 구조가 다릅니다. AGI는 어느 날 열리는 하나의 문이 아니라 검증 단가가 싼 영역부터 차례로 넘는 계단이고, 노동 재편은 AGI를 기다리지 않고 이미 시작됐습니다. 그것도 10년 전 예측과 반대 방향으로, 몸 쓰는 일이 아니라 화이트칼라 신입 책상에서 먼저.
이 글은 그 두 주장을 데이터로 잇습니다. 먼저 지금의 에이전트·강화학습·검증루프가 어디까지 미치는지, 그 경계가 왜 지능이 아니라 채점 비용으로 그어지는지. 다음으로 그 경계선이 노동 시장에 어떤 순서를 강제하는지. 마지막으로 책임이라는 마지막 방벽이 실제로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지켜 주지 못하는지입니다.
루프가 푸는 것과 못 푸는 것: 전제 네 개가 가릅니다
에이전트에 강화학습과 검증루프를 붙이는 지금의 방법론이 요구하는 조건은 명확합니다. 채점기가 참을 말할 것(테스트 통과가 실제 성공과 같을 것), 채점이 싸고 즉시일 것, 틀려도 될 것(실패 비용이 낮고 되돌릴 수 있을 것), 회전수가 컴퓨팅으로 늘어날 것(세계가 속도 제한을 걸지 않을 것). 코딩과 수학은 이 전제가 전부 성립하는 거의 유일한 분야였고, 검증 가능 보상 강화학습(RLVR)이 거기서 먼저 터진 이유입니다.
경계 바깥의 분야들은 각각 다른 전제가 깨집니다.
요컨대 지금의 병목은 지능이 아니라 검증된 경험의 단가입니다. 경험이 디지털이라 공짜인 곳은 풀렸고, 경험이 원자와 세포와 몸을 통과해야 하는 곳은 루프의 시계가 세계의 속도에 묶여 있습니다. 이 판정 기준의 상세한 근거는 앞서 검증 루프 이야기와 자율실험실 분석에서 다뤘습니다.
AGI로 가는 길: 계단이고, 앞 계단이 뒷 계단의 도구를 만듭니다
이 경계선 위에서 "AGI는 요원한가"를 물으면 답이 정의에 따라 갈라집니다.
경제적 AGI, 즉 오픈AI 헌장의 표현대로 "경제적으로 가치 있는 일 대부분에서 사람을 능가하는" 시스템 쪽은 궤적이 구체적입니다. METR이 측정하는 지표 중에 에이전트가 50퍼센트 성공률로 완수하는 과제의 길이(사람 전문가 기준 소요 시간)가 있습니다. 이 시간 지평이 2019년 4초에서 2026년 초 14시간대까지 왔고, 배증 주기는 2019~2023년 약 7개월에서 2023년 이후 약 4개월대로 오히려 짧아졌습니다. 소프트웨어·머신러닝 과제 중심의 측정이라는 한정은 있지만, 방향과 가속도 자체는 논쟁의 여지가 적습니다.
완전 AGI, 물리와 암묵지와 열린 세계까지 포함하는 쪽은 위에서 본 경험 병목에 묶여 있습니다. 다만 "요원하다"로 결론 내리기 전에 봐야 할 것이 재귀 구조입니다.
손재주를 막는 접촉 물리 시뮬레이터도 코드이고, 세포실험의 회전을 올릴 실험 설계 도구도 소프트웨어이며, 신약 앞단의 프록시 간격을 줄일 학습된 검증기도 머신러닝 연구의 산출물입니다. 즉 디지털 계단의 속도가 물리 계단의 개방 시점을 앞당깁니다. 제프 딘의 디스커버리 루프가 신약이 아니라 머신러닝 연구 자동화부터 시작하는 것은 이 구조에 대한 베팅입니다.
그래서 정확한 그림은 단일 문턱의 유무가 아니라 계단의 진행률입니다. 지금 AI는 어떤 과제에서 초인이고 어떤 과제에서 유아 수준인데, 그 들쭉날쭉한 경계선은 무작위가 아니라 검증 단가 순서로 그어져 있습니다.
한 가지 각주를 달아 두면, 데이비드 도이치의 기준을 적용하면 지금의 어떤 시스템도 진짜 추측을 못 하므로 AGI가 아닙니다. 그런데 노동 대체에는 그 기준이 필요 없습니다. 임금 노동의 대부분은 새 지식을 창출하는 일이 아니라 기존 지식을 적용하고 전달하고 확인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철학적 AGI 논쟁과 경제적 재편은 독립된 질문이고, 후자는 전자의 결론을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재편은 예측과 반대로 왔습니다
10년 전의 통념은 로봇이 공장과 물류창고부터 비우고 지식노동은 안전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 순서는 반대입니다. 위의 경계선을 노동에 겹치면 이유가 자명합니다. 임금 총액 기준으로 선진국 노동의 절반 가까이가 화면 안에서 시작해 화면 안에서 끝나는 일이고, 그 일들은 루프의 네 전제가 성립하는 쪽에 서 있습니다. 배관공과 간병인과 숙련 용접공은 전제가 깨지는 쪽에 서 있습니다. 대체 순서가 임금·학력 순서와 거꾸로라는 것이 이 국면의 핵심 충격입니다.
데이터가 이미 그 방향을 보여 줍니다.
- 스탠퍼드 디지털경제연구소가 ADP 급여 데이터로 낸 "탄광의 카나리아" 연구 기준으로, AI 노출이 큰 직군의 22~25세 고용이 상대적으로 16퍼센트 감소했습니다. 같은 직군의 경력자 고용은 안정적이었습니다.
- 같은 연구의 더 중요한 구분: AI가 자동화형으로 쓰이는 직군에서는 젊은 층 고용이 줄었고, 증강형으로 쓰이는 직군에서는 전 연령 고용이 오히려 늘었습니다.
- 미국 신규 대졸자(22~27세) 실업률은 5.7퍼센트로 올라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전체 실업률을 웃돌았습니다(보도 기준).
- 앤트로픽 이코노믹 인덱스 기준으로 직업의 49퍼센트에서 태스크의 4분의 1 이상이 클로드로 수행된 적이 있고, 사용 구성은 증강 57 대 자동 43인데 자동 비중이 계속 올라가는 중이며, 사람 손을 거치지 않는 API 트래픽은 자동 우세입니다.
신입 자리가 먼저 꺾이는 이유는 잔인할 만큼 구조적입니다. 주니어가 하던 일, 즉 코드 디버깅, 문서 검토, 초안 작성, 기초 모델링, 데이터 정리가 정확히 채점 가능한 태스크이기 때문입니다. 경력자의 일에는 채점 안 되는 성분(맥락 판단, 관계, 책임)이 더 섞여 있어서 늦게 넘어갑니다.
책임은 벽이 아니라 칼입니다
여기서 자연스러운 반론이 나옵니다. AI는 책임을 질 수 없으니 판단이 걸린 일은 결국 못 맡기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 논리는 실재하지만, 무엇을 지키는지 정확히 봐야 합니다.
우선 판단 자체는 이미 자동화되고 있습니다. 신용 승인, 이상거래 차단, 보험 인수 심사, 광고 입찰, 콘텐츠 삭제까지, 초당 수천 건의 판단이 사람 없이 내려집니다. 판단력이 모자라서 못 맡기는 것도 아닙니다. 통계적 판단과 전문가의 직관을 비교한 연구는 1954년 밀(Meehl) 이후 70년 치가 쌓여 있고, 메타분석 기준으로 통계 쪽이 절반 가까이에서 우세하고 대부분 동률이며 사람이 이기는 경우가 소수입니다. 정확한 진단은 "AI가 판단을 못 한다"가 아니라 판단의 결과를 감당할 법인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법인격 문제는 책임을 두 성분으로 쪼개는 순간 절반이 무너집니다.
판단 업무의 시간 구성을 뜯어 보면 자료 수집과 선택지 구조화와 근거 문서화가 대부분이고 서명 자체는 얇습니다. AI는 서명 직전까지를 먹습니다. 그러면 서명자 한 명의 처리량이 몇 배가 되고 필요한 서명자의 수가 줄어듭니다. 그래서 책임은 화이트칼라를 지키는 벽이 아니라 소수의 서명자와 다수의 준비 노동을 가르는 칼입니다.
무엇이 오래 남는가: 채점 축과 책임 축을 겹친 지도
오른쪽 아래 칸을 지키는 것은 책임만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전략 판단은 결과가 늦게, 교란된 채로 돌아오므로 검증 루프가 돌지 않고, 루프가 돌지 않으니 모델도 거기서 빨리 늘지 못합니다. 책임 축과 검증 축이 같은 칸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재편 시나리오: 속도는 논쟁 중이고, 순서는 합의에 가깝습니다
거시 전망은 크게 갈립니다. 아세모글루는 2024년 논문에서 향후 10년 총요소생산성 개선을 0.5~0.7퍼센트 이내로 봤고, 골드만삭스는 글로벌 GDP 7퍼센트 증가를, 맥킨지는 연 17조~26조 달러 규모의 효과를 전망했습니다. 수십 배 차이인데, 갈리는 지점은 데이터가 아니라 가정입니다. 자동화 가능한 태스크의 비중, 확산 속도, 보완 투자를 어떻게 잡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속도 논쟁과 달리 순서는 위의 두 축에서 거의 기계적으로 나옵니다. 재편은 단계로 진행되고, 각 단계에는 그 단계에 들어섰음을 알려 주는 관측 지표가 있습니다.
시나리오를 가르는 실질 변수도 이미 데이터에 나와 있습니다. 스탠퍼드 연구의 구분대로 자동화형 사용이 우세해지면 고용 충격 시나리오로, 증강형이 유지되면 재배치 우세 시나리오로 갑니다. 지금 바늘은 자동 비중이 올라가는 쪽으로 움직이는 중입니다. 앤트로픽 인덱스에서 사람 손을 거치지 않는 API 트래픽이 자동 우세라는 사실은, 에이전트 배치가 늘수록 구성이 자동 쪽으로 기운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남는 리스크 하나는 3단계의 시한폭탄입니다. 서명자는 준비 노동을 하면서 양성됩니다. 주니어 심사역의 10년이 시니어의 감을 만들었는데, 주니어 일이 사라지면 다음 세대 서명자가 나올 경로가 끊깁니다. 이 문제를 조직이 어떻게 푸는지(시뮬레이션 수련인지, 도제 재설계인지, 그냥 방치인지)가 2030년대 전문직 노동의 모양을 정할 것입니다.
실사 질문이 바뀝니다
이 구도를 받아들이면 투자 실사에서 묻는 질문이 달라집니다. "AI가 이 직무를 대체하는가"는 답이 안 나오는 질문입니다. 대신 이렇게 쪼개집니다.
- 이 직무의 오류는 누가 얼마에 잡아내는가. 오류가 싸고 확인 가능한 일은 빠르게 넘어가고, 오류가 비싸고 귀속이 어려운 일은 모델이 유능해도 늦게 넘어갑니다.
- 이 회사의 루프는 채점기를 소유했는가. 현장의 데이터 루프에서 다뤘듯, 가치는 모델이 아니라 비싼 채점기를 소유한 쪽(임상 네트워크, 자율실험실, 계측된 공장, 로봇 플릿)에 쌓입니다.
- 이 제품은 자동화형인가 증강형인가. 같은 기술이라도 어느 쪽으로 팔리느냐에 따라 고객사의 고용 구조와 도입 저항이 달라지고, 그것이 확산 속도를 정합니다.
AGI는 요원한 것이 아니라 분할 상환 중입니다. 노동 대체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 순서가 정해져 있고, 그 순서는 능력이 아니라 검증 단가와 책임 구조가 정합니다. 그리고 그 두 축이 가리키는 방향은 같습니다. 지금 가장 빠르게 사라지는 것은 일자리 전체가 아니라, 채점 가능한 준비 노동으로 이루어진 첫 번째 책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