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원칙을 버린 VC들, 결과는 29배와 1배로 갈렸습니다
2023년 11월 20일, 월스트리트저널 프로에 기사가 하나 실렸습니다. 제목은 "VCs Ignore Their Own Advice in Pursuit of Generative AI"였고, 부제는 딜 경쟁 속에서 몇 가지 원칙이 옆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기사가 인용한 이유는 짧았습니다. 투자하지 않는 비용이 상당히 크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로부터 2년 9개월이 지났습니다. 이제 그 진단을 채점할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적으면, 그 말은 맞았습니다. 다만 모든 회사에 대해 맞은 문장이 아니라 극소수 회사에 대해서만 맞은 문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둘을 구분하는 일이야말로, 그때 밀려난 원칙들이 하던 일이었습니다.
이 글은 산업과 투자 관행에 대한 분석이며, 특정 회사에 대한 투자 판단을 담지 않습니다.
그때 접어둔 원칙들
당시 밀려난 것으로 지목된 관행은 대체로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실사에 쓰는 시간, 진입 가격에 대한 규율, 목표 지분율, 한 테마에 얼마나 몰아넣을지에 대한 한도입니다. 경쟁이 심해지면 가장 먼저 양보하게 되는 항목들이기도 합니다.
이 흐름은 그 뒤로 되돌아오지 않았습니다. 2025년 11월 테크크런치 보도에서 카우보이벤처스의 에일린 리는 지금을 이상한 시기라고 표현하면서, 어떤 회사는 1년 만에 매출이 0에서 1억 달러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기사에서 DVx벤처스의 존 맥닐은 예전에는 시리즈 A에서 적용하던 잣대를 이제 시드 단계에 그대로 들이댄다고 했습니다. 판단 기준 자체가 바뀐 것입니다.
채점표 1: 투자하지 않는 비용은 실제로 컸습니다
먼저 원칙을 접은 쪽의 손을 들어주는 증거입니다.
오픈AI는 2023년 1월 마이크로소프트의 대규모 투자 당시 기업가치가 약 290억 달러로 알려졌습니다. 2026년 3월 기준으로는 약 8,520억 달러로 보도됩니다. 단순 계산으로 약 29배입니다. 앤스로픽은 2026년 5월 시리즈 H에서 약 9,650억 달러로 평가받으며 오픈AI를 넘어 가장 가치가 높은 AI 스타트업이 됐다고 CNBC 등이 보도했습니다. 초기 라운드에 들어간 펀드라면 장부상 배수는 훨씬 큽니다.
이 정도면 2023년에 "규율을 지키느라 빠졌다"는 선택의 대가가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갑니다. 벤처 펀드는 소수의 성공이 전체를 되돌리는 구조라, 이런 회사 하나를 놓치는 것은 실제로 치명적입니다. 기사의 주장은 이 지점에서 정확했습니다.
채점표 2: 같은 논리로 들어간 다른 회사들
문제는 2023년 당시 같은 논리, 같은 열기 속에서 자금을 받은 회사가 이들만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인플렉션AI는 2024년 3월 마이크로소프트가 인력 대부분을 흡수하고 기술 라이선스로 6억 5천만 달러를 지급하는 형태로 정리됐습니다. 보도 기준으로 투자자 회수는 약 1.1배에서 1.5배 수준이었습니다. 어뎁트는 2023년 10억 달러 기업가치로 평가받았지만 2024년 아마존이 인력을 데려가고 3억 3천만 달러를 라이선스로 지급하는 형태로 마무리됐고, 대부분의 투자자는 원금 수준을 돌려받는 데 그쳤습니다. 캐릭터닷AI는 창업자와 일부 팀이 구글로 돌아가고 별도 라이선스 계약이 맺어졌으며, 투자자 회수는 최소 2.5배로 알려졌습니다.
숫자만 보면 손실이 아닙니다. 원금은 대체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벤처 펀드의 셈법에서 1배와 2.5배는 실패에 가깝습니다. 10년 가까이 자금을 묶어두고 물가와 기회비용을 감안하면, 원금 회수는 사실상 마이너스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비대칭이 하나 있습니다. 왼쪽의 29배는 아직 장부상 숫자입니다. 아직 분배되지 않았습니다. 반면 오른쪽의 1배는 이미 확정된 결과입니다. 지금 시점에서 이익은 미실현이고 손실은 실현됐습니다.
인재 흡수형 정리라는, 그때는 없던 결말
인플렉션과 어뎁트의 마무리 방식은 2023년 계약서가 상정하지 않았던 형태입니다. 회사를 인수하는 것이 아니라 핵심 인력을 데려가고 기술 사용권만 사가는 구조입니다. 투자자에게는 원금 언저리가 돌아오고, 회사에는 사람이 남지 않습니다.
이 결말이 왜 문제인지는 분명합니다. 벤처 계약의 보호 장치는 대체로 회사가 팔리거나 망하는 상황을 가정합니다. 그런데 이 방식은 둘 중 어느 쪽도 아닙니다. 규제 당국이 이 구조를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도 그래서입니다.
2026년의 구조: 쏠림은 더 심해졌습니다
원칙이 되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자금 흐름에서 더 분명하게 보입니다.
OECD가 2026년 2월 발표한 집계에 따르면, 2025년 AI 기업은 글로벌 벤처 투자금의 61퍼센트를 흡수했습니다. 금액으로는 전체 4,271억 달러 가운데 2,587억 달러입니다. 2022년의 30퍼센트에서 두 배 이상으로 커졌습니다. 같은 자료에서 메가딜은 2025년 AI 투자금액의 약 73퍼센트를 차지했고, 10억 달러가 넘는 거래가 그 절반가량이었습니다.
투자금의 절반 이상이 한 분야로 가고, 그 안에서도 대부분이 소수의 거대 거래로 간다는 뜻입니다. 2023년에 지적된 집중 한도라는 원칙이 지금은 사실상 작동하지 않는다고 봐야 합니다.
그래서 무엇이 실제로 위험을 줄였나
채점표를 다시 보면 한 가지가 드러납니다. 2023년에 밀려난 원칙들은 어떤 회사가 성공할지 맞히는 도구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인플렉션과 오픈AI를 사전에 갈라낼 수 있었던 실사 항목은 많지 않았습니다. 둘 다 최고 수준의 연구진이 있었고, 둘 다 프론티어 모델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 원칙들이 하던 일은 다른 쪽이었습니다. 틀렸을 때 얼마나 다치는지를 정하는 일이었습니다. 진입 가격이 낮으면 원금 회수도 손실이 아니고, 집중 한도가 있으면 같은 이유로 여러 건이 동시에 무너지지 않습니다. 지분율 규율이 있으면 맞혔을 때 펀드에 실제로 기여합니다.
사후에 보면 승패를 가른 변수는 모델 품질보다 유통과 상업적 채택에 가까웠습니다. 다만 이것은 결과를 알고 나서 하는 해석이므로, 2023년 시점에 그 변수를 확신할 수 있었다고 주장하기는 어렵습니다. 여기서 정직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시점에 알 수 없었기 때문에라도 회복 가능성을 설계에 넣어두는 편이 합리적이었다는 정도입니다.
맺으며
"투자하지 않는 비용이 크다"는 2023년의 진단은 맞았습니다. 오픈AI와 앤스로픽을 보면 반박할 여지가 없습니다.
다만 그 문장은 AI 전체에 대해 참인 문장이 아니라 몇 개 회사에 대해서만 참인 문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몇 개를 나머지와 구분하는 일, 혹은 구분에 실패하더라도 회복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이 바로 그때 접어둔 원칙들이 하던 일이었습니다. 경쟁이 가장 뜨거울 때 가장 먼저 양보하게 되는 것이 하필 그 장치라는 점이, 이 채점표에서 남는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출처 노트
- 원 기사: Yuliya Chernova, "Pro Take: VCs Ignore Their Own Advice in Pursuit of Generative AI", The Wall Street Journal Pro, 2023년 11월 20일. 제목과 부제 기준이며 본문은 유료 구독 영역입니다.
- 원칙 변화의 지속: TechCrunch, "VCs abandon old rules for a 'funky time' of investing in AI startups", 2025년 11월 13일. 에일린 리(카우보이벤처스), 존 맥닐(DVx벤처스) 발언 기준입니다.
- 자금 집중도: OECD, "AI firms capture 61% of global venture capital in 2025", 2026년 2월 발표 집계 기준입니다. 집계 방법에 따라 기관별 수치 차이가 있습니다.
- 기업가치: 오픈AI와 앤스로픽 수치는 언론 보도 기준이며, 배수는 보도된 기업가치로 단순 계산한 값입니다. 장부상 평가액으로 실현된 회수가 아닙니다.
- 회수 사례: 인플렉션AI, 어뎁트, 캐릭터닷AI의 투자자 회수 배수는 언론 및 업계 분석 보도 기준이며, 개별 펀드의 실제 회수는 진입 시점과 조건에 따라 다릅니다. 독립 검증 전 수치로 보시는 편이 안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