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는 안 죽었고, 80퍼센트 마진이 죽었습니다
2026년 2월, 시장은 이른바 소프트웨어 종말론에 반응해 소프트웨어 주식에서 1조 달러 넘는 시가총액을 지웠습니다. 논리는 단순했습니다. 에이전트가 일을 직접 하니 소프트웨어가 필요 없어지고, 좌석당 과금은 죽고, 기존 업체는 끝난다는 것입니다.
그로부터 반년, 실적이 나왔습니다. 수요 쪽에서는 그 판단이 틀렸습니다. 그런데 같은 실적 자료가 다른 이야기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수요는 늘었고, 회사들이 이유를 AI라고 말합니다
숫자를 하나씩 보면 이렇습니다.
팔란티어는 2026년 2분기 매출 19억 달러로 1년 전보다 93퍼센트 늘었고, 순이익 11억 달러는 작년 한 해 매출 전체를 넘겼습니다. 미국 상업 부문은 150퍼센트 가까이 뛰었습니다.
서비스나우는 2분기 구독 매출 38억 8천만 달러로 고정환율 기준 23퍼센트 성장하며 가이던스를 1.5포인트 넘겼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AI 연간계약액이 10억 달러를 넘어섰다는 대목이고, 연말까지 15억 달러를 예상합니다. 에이전트를 실제 운영에 넣은 고객은 아홉 달 만에 아홉 배로 늘었습니다.
클라우드플레어는 1분기 매출 6억 4천만 달러로 34퍼센트 성장했고, 최고경영자는 AI를 두고 회사 역사상 가장 큰 순풍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스노우플레이크는 연간 가이던스를 27퍼센트에서 31퍼센트로 올렸습니다. 코드 작성을 돕는 코텍스 코드가 7,100개 넘는 계정에서 쓰이고 있고, 회사는 이것이 전망 상향의 최대 동인이라고 밝혔습니다.
세일즈포스는 매출 111억 달러로 13퍼센트 성장했는데, 에이전트포스 연간반복매출이 12억 달러로 205퍼센트 뛰며 처음 10억 달러를 넘겼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종말론은 명백히 틀렸습니다. 그런데 같은 자료를 조금 더 읽으면 그림이 복잡해집니다.
그런데 마진이 내려앉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번 실적에서 가장 덜 다뤄진 대목입니다.
소프트웨어를 특별한 사업으로 만든 것은 한 번 만들어 여러 번 파는 구조였습니다. 그래서 총이익률이 80~90퍼센트였습니다. 그런데 AI 기능은 고객이 쓸 때마다 추론 비용이 발생합니다. 원가가 인력이 아니라 사용량을 따라 늘어납니다.
숫자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클라우드플레어의 총이익률은 직전 분기 대비 2.1퍼센트포인트, 1년 전 대비 1.3퍼센트포인트 내려갔습니다. 회사는 이유를 마진이 낮은 개발자 제품과 추론 워크로드의 비중 증가라고 설명했습니다. 서비스나우도 영업이익률이 가이던스를 3포인트 넘겼음에도 실적 자료에서 AI로 인한 마진 압박이 함께 언급됐습니다.
업계 전반의 추정은 더 뚜렷합니다. 성장 단계 기업에서 추론 비용이 매출의 약 23퍼센트를 잠식하고, AI 제품의 기대 총이익률은 약 52퍼센트 수준으로 조사됩니다. AI 마진 압박을 공시한 상장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이전 기준선보다 10~17퍼센트포인트 낮은 총이익률을 보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분석이 공통으로 짚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건 일시적 조정이 아니라 구조 변화라는 것입니다.
좌석이 더 이상 가치의 대리지표가 아닙니다
마진 압박은 곧바로 가격 모델을 바꿉니다.
좌석당 과금은 사람 수가 곧 쓰는 양이라는 전제 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AI가 일을 대신하면 이 전제가 깨집니다. 사람은 그대로인데 처리량이 열 배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사람이 줄어도 매출은 유지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좌석 수는 전달된 가치를 재지 못합니다.
그래서 2026년에 나온 AI 제품들의 가격표가 일제히 바뀌었습니다. 세일즈포스 에이전트포스, 서비스나우의 어시스트 계열, 인터콤의 상담 에이전트가 모두 소비량과 성과가 섞인 하이브리드 구조로 출시됐습니다. 변동비를 공급자 장부에서 고객 쪽으로 옮기는 설계입니다.
클라우드플레어의 역설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 여기 있습니다.
클라우드플레어는 매출이 34퍼센트 늘어난 그 분기에 인력의 20퍼센트, 1,100명을 줄였습니다. 이유도 AI였습니다. 수요를 늘린 것도 AI이고, 그 수요를 감당하는 데 필요한 사람을 줄인 것도 AI였습니다.
종말론이 물었던 질문은 "소프트웨어 회사가 살아남는가"였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회사는 살아남고 인력 구조가 바뀌는 것에 가깝습니다.
대체가 아니라 덧붙이기라는 증거
한 가지 반가운 데이터가 있습니다. AI가 기존 소프트웨어를 잡아먹는지에 대한 직접적인 답입니다.
세일즈포스에 따르면 에이전트포스와 데이터 제품 예약의 절반 이상이 기존 고객에게서 나왔고, 기존 고객이 자기 라이선스를 에이전트포스로 갈아치우지 않았습니다. 기존 계약은 유지한 채 AI 제품을 추가로 산 것입니다. 서비스나우의 갱신율이 98퍼센트를 유지한 것도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AI가 기존 소프트웨어를 대체한 것이 아니라 그 위에 얹혔습니다.
그래서 종말론은 어떻게 되나
정확히 나누면 이렇습니다.
틀린 부분. 수요가 줄고 기존 업체가 무너진다는 예측은 실적으로 반박됐습니다. 오히려 AI가 새로운 지출 항목을 만들어 성장률을 끌어올렸습니다. 서비스나우의 AI 연간계약액 10억 달러, 세일즈포스의 에이전트포스 12억 달러는 작년에 없던 매출입니다.
맞은 부분. 다만 종말론이 겨눈 것 중 하나는 실제로 죽는 중입니다. 좌석당 과금과 80퍼센트 총이익률입니다. 소프트웨어 산업의 수익성 공식 자체가 바뀌고 있고, 여러 분석이 이를 되돌릴 수 없는 변화로 봅니다.
즉 2월에 시장이 지운 1조 달러는 매출이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으로는 틀렸고, 이익의 질이 달라질 것이라는 예측으로는 절반쯤 맞았습니다. 다만 헤드라인은 앞의 이야기로 퍼졌습니다.
앞으로 볼 지표
이 구조에서는 매출 성장률만 보면 그림을 놓칩니다. 함께 봐야 할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총이익률의 방향입니다. 성장률이 높아도 총이익률이 계속 내려가면 그 성장은 예전만큼의 이익을 만들지 못합니다. AI 제품 비중이 늘수록 이 압력이 커집니다.
AI 매출이 추가인지 대체인지입니다. 세일즈포스처럼 기존 계약을 유지한 채 얹히는 것과, 기존 제품 매출을 갉아먹으며 커지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갱신율과 기존 고객 비중을 함께 봐야 구분됩니다.
추론 원가를 누가 부담하는가입니다. 하이브리드 가격으로 변동비를 고객에게 넘긴 회사와, 정액 요금 안에 AI를 끼워 넣은 회사의 손익은 시간이 갈수록 벌어집니다. 여기에 추론 단가 자체가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는 점까지 겹치면, 이 부담을 어떻게 설계했느냐가 몇 분기 뒤 격차로 나타날 것으로 봅니다.
소프트웨어는 죽지 않았습니다. 다만 소프트웨어를 그렇게 좋은 사업으로 만들어주던 숫자가 옛날 숫자가 되어가는 중입니다.
본 글은 각 회사가 공시한 실적 자료와 공개 발언, 업계 조사 자료를 근거로 한 산업 분석이며, 특정 종목에 대한 판단이나 투자 권유를 담고 있지 않습니다. 인용한 성장률은 회사마다 기준 기간과 산정 방식이 달라(분기 매출·구독 매출·연간 가이던스·고정환율 등) 직접 비교는 참고용입니다. 마진 관련 업계 추정치는 조사기관과 표본에 따라 달라집니다.
주요 출처: 팔란티어 2026년 2분기 실적, 서비스나우 2026년 2분기 실적 발표 및 실적발표회, 클라우드플레어 2026년 1분기 실적과 인력 조정 공시, 스노우플레이크 FY2027 1분기 실적과 가이던스, 세일즈포스 FY2027 1분기 실적, AI 원가·마진 관련 업계 조사(ICONIQ 등), 2026년 2월 소프트웨어 주식 조정 관련 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