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은 양산, HBF는 규격, HBS는 구상입니다: 병목이 옮겨간 자리의 기술들은 시계가 다릅니다
최근 한 반도체 강연이 내놓은 전망은 한 줄로 줄어듭니다. AI 성능의 병목이 연산기 자체에서 메모리 이동과 패키징, 인터커넥트, 전력으로 옮겨간다. 그리고 그 자리를 노리는 기술로 HBM, HBF, HBS, 3D 패키징과 칩렛, 유리기판, 실리콘 포토닉스, 그 너머의 양자·뉴로모픽·광컴퓨팅을 들었습니다.
방향은 맞습니다. 문제는 이 기술들을 같은 확정도로 묶어 읽기 쉽다는 데 있습니다. 특히 HBM, HBF, HBS는 글자가 비슷해 한 계열처럼 보이지만 하나는 양산 중이고, 하나는 이번 달 첫 규격이 나왔으며, 하나는 아직 보도만 있습니다. 이 글은 각 기술을 회사 발표와 보도 기준으로 확인해 양산·검증·구상의 세 시계에 나눠 놓은 것입니다.
병목이 옮겨갔다는 증거는 엔비디아의 설계 변경입니다
전망의 전제부터 확인합니다. 연산기가 아니라 데이터 이동이 병목이라는 주장에는 오래된 수치가 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가속기의 최대 연산 성능은 약 6만 배 늘었는데, DRAM 대역폭은 약 100배, 인터커넥트 대역폭은 약 30배 늘었습니다(버클리 연구진 분석 기준). 에너지 쪽은 더 기울어져 있어서, 칩 밖 DRAM에서 값을 한 번 읽어 오는 데 드는 에너지가 곱셈·누산 한 번의 약 200배입니다. 연산을 더 빠르게 만드는 일보다 값을 덜 옮기는 일이 성능과 전력을 함께 좌우하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이 숫자보다 더 직접적인 증거가 이달에 나왔습니다. 트렌드포스는 8월 4일 엔비디아가 2027년형 가속기 루빈 울트라의 HBM 구성을 낮추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원래 설계는 12단 HBM4e였는데, 3분기부터 8단 HBM4e, 12단 HBM4, 8단 HBM4를 대안으로 놓고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둘입니다. 2027년 DRAM 전반이 부족해 메모리 회사들이 HBM에 돌릴 수 있는 웨이퍼가 제한되고, HBM4e의 검증 완료 시점과 수율 상승이 불확실하다는 것입니다. 최종 사양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보도 기준).
연산기를 설계하는 회사가 메모리 공급에 맞춰 자기 제품을 깎는 상황입니다. 병목이 어디로 옮겨갔는지를 이보다 잘 보여 주는 사례는 없습니다.
전력도 같은 방향입니다. 엔비디아가 제시한 2027년 하반기 루빈 울트라 랙은 랙 하나에 600킬로와트로, 현 세대 블랙웰 랙의 120킬로와트의 다섯 배입니다(회사 발표 기준). 이 전력의 상당 부분이 연산이 아니라 데이터를 옮기는 데 쓰이고, 그래서 구리를 빛으로 바꾸는 일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됩니다. 미국과 중국의 추론 스택이 갈라선 이유에서 다룬 제약 구조가 그대로입니다.
HBM은 세 공급사가 모두 양산 중이고 위험은 수요가 아닙니다
HBM은 일곱 기술 가운데 유일하게 양산과 매출이 같이 있는 기술입니다. 엔비디아는 6월 1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세 곳 모두 차세대 HBM4 인증을 받아 양산에 들어갔다고 확인했고, 그 메모리를 쓰는 베라 루빈은 3분기 고객 출하를 시작합니다(회사 발표 기준). 루빈 한 개에 HBM4 여덟 스택, 288기가바이트가 붙습니다.
공급 구도는 움직이는 중입니다. 2026년 1분기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 점유율은 58퍼센트로 1위를 지켰지만 1년 전 69퍼센트에서 내려왔고, 엔비디아 HBM4 물량 배분은 SK하이닉스 50퍼센트대 중반, 삼성전자 20퍼센트대 중반, 마이크론 20퍼센트 안팎으로 전해집니다(시장조사·보도 기준). 삼성전자가 설 연휴 직후 HBM4를 가장 먼저 출하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가격은 내려가지 않고 올라가는 쪽입니다. 트렌드포스는 2027년 HBM 계약가가 크게 오를 것으로 보고, 2027년 HBM 비트 출하가 50에서 60퍼센트 늘어도 수요를 따라잡기에 부족하다고 봅니다. 2027년 HBM4 가격이 기가비트당 4에서 5달러로, 2026년 하반기의 약 2달러에서 두 배 넘게 뛸 수 있다는 보도도 있습니다(업계 추정).
그래서 강연이 짚은 대로 위험은 수요가 아니라 증설 이후입니다. 세 회사가 동시에 증설하고 HBM4에서 HBM4e로 세대가 넘어가는 동안, 누가 먼저 인증을 받고 누구의 수율이 먼저 오르는지에 따라 가격과 배분이 갈립니다. 엔비디아가 HBM 구성을 낮추는 안을 검토하는 것도, 고객이 부족한 공급에 설계를 맞추는 국면이 곧 가격 협상력의 정점 근처라는 뜻으로 읽힙니다. 이 블로그에서 다룬 메모리를 사던 회사들이 직접 그리기 시작한 움직임과 삼성의 zHBM은 그 다음 국면을 겨냥한 것들입니다.
HBF는 2월 컨소시엄, 8월 규격, 2027년 샘플, 2028년 양산입니다
HBF는 강연이 제시한 시점보다 한 단계 앞으로 나와 있습니다. "2026년 2월 표준화 작업을 시작한 단계"가 아니라, 8월 4일 첫 공개 규격이 이미 나왔습니다.
샌디스크와 SK하이닉스는 8월 4일 FMS 2026에서 오픈 컴퓨트 프로젝트를 통해 HBF 첫 공개 기술 규격을 냈습니다. 2월 컨소시엄 출범 뒤 여섯 달 만입니다. 컨소시엄에는 구글과 텐스토렌트가 들어와 있습니다. 규격은 NAND 8단·16단 적층으로 스택당 최대 512기가바이트, 대역폭 세 등급으로 약 0.4에서 3.0테라바이트/초, 인터페이스는 칩렛 표준인 UCIe입니다(회사 발표 기준). 샌디스크가 첫 HBF 다이를 테이프아웃했고 2027년 샘플, 2028년 양산을 목표로 한다는 보도도 이달에 나왔습니다(증권사 노트 인용, 회사 공식 일정은 별도 확인 전).
그래서 HBF는 강연의 표현대로 현재 매출 축이 아니라 3에서 5년 옵션이 맞습니다. 다만 "표준화를 시작한 단계"보다는 진도가 나가 있습니다. 규격이 공개됐고, 칩렛 표준 인터페이스를 택해 특정 가속기에 묶이지 않게 설계됐으며, 구글이 컨소시엄에 들어와 있다는 점은 수요 쪽 신호입니다. 추론에서 HBM의 용량 천장을 어떻게 메우는지는 HBM·HBF·HBC 비교에서 다뤘습니다.
HBS는 보도만 있고 규격이 없습니다
HBS는 셋 가운데 가장 이릅니다. 2025년 11월 SK하이닉스가 개발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고, 그 뒤로 공식 규격이나 컨소시엄, 샘플 일정은 없습니다.
보도된 개념은 이렇습니다.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옆에 저전력 DRAM과 NAND를 수직으로 쌓아 한 패키지로 만드는 것입니다. 기둥 모양 연결을 쓰는 VFO(Vertical Wire Fan-Out) 패키징으로 최대 16단까지 쌓고, HBM처럼 실리콘 관통 전극을 뚫지 않아 수율과 원가에서 유리하다는 설명입니다. 목표는 데이터센터가 아니라 온디바이스 AI, 즉 휴대기기 안에서 돌아가는 모델입니다.
즉 HBS는 HBM이나 HBF와 같은 시장을 노리는 기술이 아닙니다. 용처도 다르고 단계도 다릅니다. 강연처럼 HBM·HBF·HBS를 나란히 "현재형"으로 묶는 것은 양산 제품, 공개 규격, 보도된 구상을 같은 줄에 놓는 일입니다.
3D 패키징과 칩렛은 하나의 시스템이고 이미 양산입니다
강연이 가장 중요한 구조 변화로 꼽은 항목인데, 여기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다만 "미래 기술"이 아니라 현재 양산 중인 기술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둘은 별도 테마가 아닙니다. 큰 칩 하나를 만드는 대신 기능별 칩렛을 만든 뒤, 2.5D인 CoWoS와 3D인 SoIC로 HBM과 함께 한 패키지에 묶습니다. 엔비디아 블랙웰이 GPU 다이 두 개를 CoWoS-L로 잇는 구조였고, 루빈은 CoWoS-L에 SoIC를 더해 수직으로도 쌓는 첫 세대입니다(보도 기준). 수직 연결이 짧아지면 같은 대역폭에 전력이 덜 듭니다.
용량도 따라오고 있습니다. TSMC의 CoWoS 생산능력은 2026년 말 월 11만 5천에서 14만 장, 2027년 약 17만 장으로 전망되고, 2022년부터 2027년까지 CoWoS는 연평균 80퍼센트, SoIC는 90퍼센트 성장한다는 것이 회사 설명입니다. CoWoS 수급 격차는 2026년 말 20퍼센트에서 10퍼센트로 좁혀질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보도 기준).
그래서 병목은 미세공정에서 패키징 수율, 열 관리, 검사, 기판, 다이 간 연결로 옮겨갑니다. 칩 하나의 성능이 아니라 여러 칩을 한 덩어리로 만드는 공정이 생산량을 정합니다. HBM 다음으로 양산과 매출이 함께 있는 축이고, 유리기판과 광연결은 바로 이 패키지를 더 키우고 더 멀리 잇기 위한 후속 기술입니다.
유리기판은 앞당겨지지 않고 늦춰지고 있습니다
유리기판은 강연의 시간축을 수정할 필요는 없지만, 방향이 낙관 쪽이 아니라는 점은 보태야 합니다.
유리기판이 필요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유기기판보다 평탄하고 열과 기계 응력에 안정적이며 배선을 촘촘히 넣을 수 있어서, 칩렛을 더 많이 얹은 더 큰 패키지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인텔은 상용 시점을 2020년대 후반으로 제시해 왔고, 2026년 1월 EMIB와 유리 코어를 결합한 첫 샘플을 공개했습니다. 지금은 애리조나 파일럿 라인만 있고 뉴멕시코를 첫 양산 부지로 검토 중이며, 인도에 33억 달러 규모 공장을 5에서 6년에 걸쳐 짓겠다고 밝혔습니다(보도 기준). 광연결을 결합한 유리기판의 상용화는 2030년께로 봅니다.
문제는 양산 쪽 소식이 앞당겨지는 게 아니라 밀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삼성전기는 고객 신뢰성 평가에서 샘플이 통과하지 못해 양산 목표가 2027년 하반기에서 2028년으로, 다시 그 이후로 밀렸다는 보도가 8월에 잇따랐고, 7월에 세운 합작사의 양산 목표는 2030년입니다. 가장 앞선 곳은 SKC 자회사 앱솔릭스로, 조지아 공장 장비 설치를 마치고 AMD에 양산용 샘플을 공급하고 있으며 이르면 올해 안 상업 생산을 목표로 합니다. AMD는 2028년께 고성능 연산 칩에 유리기판 적용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도 있습니다.
그래서 유리기판은 2027년 이후 고객 인증과 수율이 확인돼야 하는 중기 옵션이라는 강연의 위치가 맞고, 그 시점이 2028년에서 2030년으로 넓게 퍼져 있다는 점을 더해야 합니다. 유리의 깨지기 쉬운 성질, 관통 전극 수율, 큰 기판의 휨이 공통 관문입니다.
광연결은 스위치에서 먼저 현실이 됐습니다
강연이 "미래 기술"로 묶은 항목 가운데 상용 전환이 가장 빠른 축입니다. 그리고 그 전환이 어디서 먼저 일어났는지가 중요합니다.
엔비디아는 TSMC와 함께 만든 COUPE 기반 Spectrum-X 광통합(CPO) 스위치를 6월부터 일부 파트너에 출하하기 시작했고, 하반기 양산 확대를 예고했습니다. 처리량은 최대 400테라비트/초입니다(회사 발표·보도 기준). TSMC의 COUPE는 광 엔진과 스위치 칩을 한 패키지에 넣는 실리콘 포토닉스 패키징 플랫폼으로, 회사는 2026년부터 생산을 제시해 왔습니다.
여기서 정확히 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 출하되는 CPO는 스위치에 들어갑니다. 랙과 랙을 잇는 연결이 먼저 빛으로 바뀌었고, 랙 안에서 GPU와 GPU를 묶는 연결은 아직 구리입니다. 거리가 짧은 구간에서는 구리가 여전히 싸고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강연의 "GPU 간 데이터 이동을 광으로"라는 표현은 목적지이지 현재 제품이 아닙니다. 다만 랙 전력이 600킬로와트로 가면 이 구간도 바꿀 압력이 커지고, 그 시점은 아직 아무도 공식 일정으로 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일곱 항목 중 "미래"에서 "현재"로 가장 빨리 넘어온 축이 이것입니다. 2025년에 발표하고 2026년에 출하했습니다. 유리기판이 2023년 발표 뒤 아직 파일럿에 있는 것과 대비됩니다. 차이는 단순합니다. 광연결은 기존 패키징 위에 얹는 기술이고, 유리기판은 패키징의 바닥을 바꾸는 기술입니다.
양자·뉴로모픽·광컴퓨팅은 다른 시계에 있습니다
강연이 이 셋을 후순위로 둔 이유는 "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이고, 그 판단은 맞습니다. 다만 이유를 하나 더 붙일 수 있습니다. 위의 여섯 기술은 지금의 연산 방식을 그대로 두고 데이터 이동만 고치는 기술입니다. 양자, 뉴로모픽, 광컴퓨팅은 연산 방식 자체를 바꾸는 기술이라 기존 소프트웨어와 모델을 그대로 쓸 수 없습니다. 같은 "미래 기술"이어도 채택 비용의 종류가 다릅니다. 현재 AI 데이터센터의 수급 분석에 넣을 항목이 아니라 10년 단위의 연구 옵션으로 분리해야 합니다.
시계는 셋입니다
양산의 시계(2026년에서 2028년) 에는 HBM, 3D 패키징과 칩렛, 그리고 스위치용 CPO가 있습니다. 셋 다 제품이 출하되고 매출이 잡히며, 남은 질문은 "되는가"가 아니라 "누가 얼마에 얼마나"입니다. 병목도 여기서는 기술이 아니라 패키징 수율, 열, 검사, 기판 같은 공정 쪽으로 옮겨갑니다.
검증의 시계(2028년에서 2030년) 에는 HBF, 유리기판, GPU 간 광연결이 있습니다. 규격이나 샘플은 있지만 고객 인증과 수율이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HBF는 이달 규격이 나와 이 시계의 앞쪽에, 유리기판은 고객 평가 탈락 보도가 나와 뒤쪽에 있습니다.
구상의 시계(2030년 이후) 에는 HBS와 양자·뉴로모픽·광컴퓨팅이 있습니다. 보도나 연구는 있지만 규격도 일정도 없습니다.
판단
첫째, 전망의 방향은 맞고 증거는 강연보다 더 세졌습니다. 엔비디아가 2027년 DRAM 부족을 이유로 자기 가속기의 HBM 구성을 낮추는 안을 검토한다는 보도는, 병목이 연산기에서 메모리로 옮겨갔다는 주장의 가장 직접적인 증거입니다. 연산기 회사가 메모리 공급에 맞춰 설계를 깎습니다.
둘째, 가장 중요한 수정은 HBM·HBF·HBS를 같은 확정도로 읽지 않는 것입니다. HBM은 세 공급사가 양산 중인 현재 시장이고, HBF는 8월에 첫 규격이 나와 2027년 샘플과 2028년 양산을 목표로 하는 검증 단계이며, HBS는 휴대기기용이라는 용처부터 다른 데다 보도 외 근거가 없는 구상 단계입니다. 세 글자가 같다고 세 시장이 같지 않습니다.
셋째, "미래 기술" 안에서도 순서가 뒤집혔습니다. 2023년에 발표된 유리기판은 아직 파일럿이고 고객 평가에서 밀리는 보도가 나오는데, 2025년에 발표된 CPO는 2026년에 출하됐습니다. 기존 패키징 위에 얹는 기술이 패키징의 바닥을 바꾸는 기술보다 빠릅니다. 다만 CPO도 지금은 스위치이고, 가장 중요한 GPU 간 구간은 아직 구리입니다.
넷째, 양산의 시계에서는 병목이 다시 한 번 옮겨갑니다. HBM과 CoWoS의 생산능력이 늘어날수록 다음 제약은 패키징 수율, 열 관리, 검사, 기판입니다. 강연이 "3D 패키징과 칩렛"을 가장 중요한 구조 변화로 꼽은 이유가 여기 있고, 이 축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입니다.
지켜볼 지표는 시계마다 다릅니다. 양산의 시계에서는 엔비디아가 루빈 울트라 HBM 사양을 최종 확정하는 내용과 2027년 HBM 계약가, CoWoS 월 17만 장 달성 여부입니다. 검증의 시계에서는 HBF 첫 샘플이 어느 가속기에 붙는지, 앱솔릭스의 AMD 인증 결과, 삼성전기의 일정 재조정입니다. 구상의 시계에서는 HBS가 보도에서 규격으로 넘어오는지 하나면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