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ack to list

AI라는 새 도구가 장인의 손에 들어갈 때

AI영화창작넷플릭스VC 관점개인적 성찰

영화계의 한 대표님과 AI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제 질문은 넷플릭스에서 시작됐습니다. AI 영상 모델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 적어도 일부 장면에서는 실제로 촬영한 것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고 느낍니다. 이런 도구로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된다면,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도, 제작에 필요한 자본도, 관객에게 도달하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넷플릭스조차 위협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대표님의 답은 다른 곳을 향했습니다.

비주얼이 다가 아닙니다. 영화는 종합예술입니다.

연출과 편집, 사운드와 음악, 그리고 배우가 현장에서 만들어내는 즉흥성까지. 그 모든 것이 결합해 사람을 움직이는 것이 영화라는 말씀이었습니다. AI가 그럴듯한 화면을 만들고, 이른바 도파민 공식에 맞춰 잠시 주의를 붙잡을 수는 있겠지만, 그 복합적인 경험이 주는 감동까지 재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다른 생각을 이야기했습니다.

AI는 도구일 뿐입니다. 아직 새로운 도구를 장인이 충분히 다뤄보지 않았기 때문에 깊은 맛이 우러나지 않는 것 아닐까요. 장인이 AI를 다루게 되면, 거기에서도 깊은 맛을 내는 법을 터득할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논쟁이었습니다. 대화를 되짚을수록, 우리가 서로 다른 장면을 상상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표님은 인간이 빠져나간 영화를 보고 계셨고, 저는 새로운 도구를 손에 쥔 인간을 보고 있었습니다.

비주얼이 다가 아니라는 말

대표님의 반론에는 쉽게 넘길 수 없는 무게가 있습니다.

가령 누군가가 우는 장면을 생각해 봅니다. 눈물의 반짝임과 피부의 질감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것과, 그 사람이 우는 모습을 보고 관객도 울게 만드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앞에서 그 인물이 무엇을 견뎌왔는지, 누구 앞에서는 끝내 울지 않았는지, 왜 하필 지금 무너지는지에 따라 같은 표정도 전혀 다르게 읽힐 수 있습니다.

눈물을 보여주지 않는 편이 더 아플 수도 있습니다. 울어야 할 순간에 웃어버리는 사람이 더 오래 남을 수도 있습니다. 음악을 크게 넣는 대신, 아무 소리 없이 얼굴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게 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영화의 어려움도 여기에 있습니다. 장면 하나의 완성도를 높이는 일과, 그 장면이 한 편의 작품 안에서 마침내 제 몫을 하게 만드는 일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습니다.

대표님은 크리스토퍼 놀란이 배우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이야기도 꺼내셨습니다. 배우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영역은 다른 무엇으로도 대신하기 어렵다는 취지였습니다.

저는 그 말을 이렇게 받아들였습니다. 배우는 감독의 머릿속에 있는 장면을 그대로 출력하는 장치가 아닙니다. 자기 몸과 기억, 해석을 가지고 들어오는 또 한 명의 창작자입니다. 상대 배우가 예상과 다르게 반응했을 때 생기는 잠깐의 망설임, 대사를 끝내지 못하는 호흡, 감독이 주문하지 않았던 표정이 장면의 의미를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런 만남의 우발성과 모델이 여러 결과 중 하나를 생성하는 우연성을 같은 것으로 취급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둘 다 예상 밖의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창작 과정까지 같아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렇다고 이 논쟁을 영상에 소리를 붙일 수 있느냐는 기능 문제로 좁히기도 어렵습니다. 구글은 이미 2025년 Flow 공개 자료에서 Veo 3의 환경음과 인물 대사 생성 기능을 소개했습니다. 영상 모델이 비주얼 밖으로 확장된다는 사실과, 그것으로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판단은 별개입니다. 대표님이 말씀하신 종합예술의 어려움은 여전히 남습니다. (구글의 Flow 공개 자료)

한 장면이 진짜처럼 보인다는 것만으로, 그 장면 속 삶이 진짜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보여주기 싫은 것을 보여주는 용기

대화에서 가장 오래 남은 것은 기술에 관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대표님은 대중을 감동시키는 가장 검증된 방식으로, 감독이 절대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가장 깊은 내면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을 꼽으셨습니다.

자신이 멋있어 보이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신도 외면하고 싶었던 이야기입니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질투했던 마음, 용감한 척했지만 사실은 도망쳤던 순간, 끝내 사과하지 못한 일 같은 것들입니다.

저는 이 말을 모든 좋은 영화가 자전적 고백이어야 한다는 뜻으로 듣지는 않았습니다. 고통스러운 경험이 있다고 좋은 작품이 저절로 나오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다만 남에게 들려줄 만한 안전한 이야기만 골라서는 닿기 어려운 곳이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가장 개인적인 부끄러움에 충분히 깊이 들어갔을 때, 다른 사람도 차마 말하지 못했던 감정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창작자는 자기 이야기를 했는데, 관객은 자기 이야기처럼 받아들이는 순간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대표님의 AI 회의론은 더 선명해집니다. 문제는 슬픈 표정을 얼마나 정교하게 그릴 수 있느냐가 아닙니다. 왜 굳이 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그것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무엇을 감수하는지에 있습니다.

사람을 붙잡는 공식과, 사람 앞에 자신을 내놓는 용기는 같지 않습니다.

물론 자극과 감동 사이에 깔끔한 선을 그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재미있고 빠른 작품이 깊을 수도 있고, 느리고 진지한 작품이 공허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도파민’도 엄밀한 신경과학적 분류라기보다, 다음 장면을 계속 보게 하는 짧은 자극을 가리키는 표현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대표님이 지키려는 구분은 이해됐습니다. 화면을 끄기 전까지 나를 놓아주지 않는 작품과, 화면을 끄고 나서도 내 안에서 계속되는 작품은 다른 경험일 수 있습니다.

그 고백을 AI가 대신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대표님이 말씀하신 감동의 원천에 상당 부분 동의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지점에서, 제 생각은 다른 방향으로 갑니다.

감독의 가장 사적인 이야기가 중요하다면, 그 이야기를 가진 감독이 AI를 쓰면 됩니다. 배우의 예상 밖 해석이 중요하다면, 그 배우의 연기를 중심에 놓고 다른 부분에 AI를 쓸 수도 있습니다. 편집의 호흡이 중요하다면, 생성된 장면을 편집자가 고르고 버리고 다시 이어 붙이면 됩니다.

제가 상상하는 미래에는 그 사람들이 사라져 있지 않습니다.

AI가 스스로 수치심을 느껴야만 수치심에 관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창작자가 자기 경험을 외면하지 않고, 그 감정을 작품의 형식으로 옮길 수 있다면, 표현에 사용한 도구가 무엇인지는 다음 질문이 됩니다.

물론 AI를 연필이나 카메라와 완전히 같은 도구라고 말하는 것도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연필은 제가 쓰려는 문장보다 먼저 완성된 문장을 제안하지 않지만, 생성형 AI는 장면과 표현의 후보를 먼저 내놓습니다. 창작자가 그것을 편하다는 이유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도구가 작품을 이끌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화 중에 쓴 ‘가치중립적인 도구’라는 말에는 설명이 조금 필요합니다. AI를 사용했다는 사실만으로 작품의 깊이나 얕음을 판정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도구의 설계와 사용 방식이 창작에 아무 영향도 주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떤 표현은 쉽게 나오고, 어떤 표현은 계속 설명하고 고쳐야 한다면, 사람은 쉬운 쪽으로 끌릴 수 있습니다. 장인의 역할에는 그 유혹을 거절하는 일도 포함될 것입니다. 잘 만들어졌지만 내 작품에는 맞지 않는 장면을 알아보고 버리는 일입니다.

이 대목에서 놀란의 공개 인터뷰는 흥미로운 연결점을 줍니다. 그는 2023년 WIRED 인터뷰에서 AI를 유용한 도구로 볼 수 있다고 했고, 영상 효과와 음향에서의 가능성을 인정했습니다. 동시에 그 도구를 쓰는 사람의 책임과 예술가의 권리 문제를 강조했습니다. 인간의 창작을 중시하는 입장과 새로운 도구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입장이 반드시 충돌하는 것은 아닙니다. (WIRED 인터뷰)

AI에게 인간의 내면을 대신 살아달라고 부탁하는 것과, 인간이 자기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 AI를 쓰는 것은 다릅니다.

장인은 도구를 익히면서 자기 문법도 바꿉니다

‘아직 장인이 AI를 다루지 않는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구글은 2025년 Flow를 발표하면서 Dave Clark, Henry Daubrez, Junie Lau 등 영화 제작자들과의 협업을 소개했습니다. AI를 다른 제작 도구와 함께 사용하는 실험은 이미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만 이것은 도구 제공사가 소개한 사례입니다. 그 작품들이 관객에게 얼마나 깊은 감동을 주었는지까지 증명하는 자료는 아닙니다. (구글의 제작자 협업 소개)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런 쪽에 더 가깝습니다. 우리는 새 도구의 성능을 확인하는 장면을 많이 보고 있지만, 그 도구를 오래 다루면서 자기만의 표현을 쌓은 창작자들의 작품 세계는 이제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조리도구를 처음 손에 넣으면, 우선 무엇까지 가능한지 시험하게 됩니다. 얼마나 빨리 익는지, 어떤 질감이 나오는지, 전에 못 하던 것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합니다. 하지만 먹고 나서 다시 생각나는 한 접시를 만드는 일은 그다음에 있습니다. 불을 언제 줄일지, 무엇을 더 넣지 않을지, 재료의 맛을 어디까지 남길지 판단해야 합니다.

제가 말한 ‘깊은 맛’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장인이 AI를 쓰는 모습도 프롬프트 한 번으로 영화를 완성하는 모습과는 꽤 다를 것 같습니다. 배우와 함께 찾아낸 연기는 그대로 두되, 인물의 기억 속 공간을 AI로 만들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찍기 어려운 꿈의 이미지를 여러 방식으로 시험하되, 마지막에 남기는 것은 가장 화려한 장면이 아니라 그 인물의 마음에 맞는 장면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AI가 잘 만들 수 있는 장면이라도 실사로 찍겠다고 고집할 수 있습니다. 배우가 실제 공간에서 상대를 만나야 생기는 무엇이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새 도구를 잘 쓴다는 것이 모든 장면에 그 도구를 쓴다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이미 알려진 장인만을 기다릴 필요도 없겠습니다. 자기 이야기는 있었지만 제작비나 인맥, 기술의 문턱 때문에 영화를 만들지 못했던 사람이 새 도구를 통해 처음 작품을 내놓을 수도 있습니다. 기존의 뛰어난 감독이 AI를 배우는 경우와, AI를 통해 처음 감독이 되는 경우가 함께 나올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영화의 모양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기존 영화와 똑같은 것을 더 싸게 만드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이전에는 제작하기 어려웠던 기억과 시점, 시간의 흐름을 다루는 표현이 생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새로운 표현이 반드시 더 좋은 표현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 또한 작품으로 판단받아야 합니다.

쉽게 생성하는 것과 끝까지 고치는 것

투자자로서 저는 이 차이에 관심이 갑니다. 멋진 장면이 한 번 나오는 도구와, 창작자가 원하는 작품을 끝까지 완성할 수 있게 하는 도구는 다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장면에서 표정만 바꾸고 싶은데 얼굴과 조명까지 바뀐다면 어떨까요. 앞 장면의 연기를 살리려는데 다음 장면에서 인물의 인상이 달라진다면 어떨까요. 좋은 결과가 나왔지만 왜 나왔는지 몰라 다시 이어갈 수 없다면, 창작자는 결과물을 얻은 동시에 통제력을 잃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특정 모델의 현재 성능을 평가하는 말이 아닙니다. 제가 창작 도구를 볼 때 묻고 싶은 질문입니다. 감독의 의도를 얼마나 세밀하게 반영할 수 있는지, 이미 결정한 것은 유지한 채 필요한 부분만 수정할 수 있는지, 여러 사람이 함께 작업해도 선택과 수정의 이력이 이어지는지입니다.

구글이 Flow를 소개할 때 카메라 제어, 장면 편집·확장, 자산 관리 기능을 함께 내세운 것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이런 기능이 공개됐다는 사실과 실제 제작현장에서 충분히 믿고 쓸 수 있다는 평가는 구분해야 하지만, 도구가 향하는 방향은 읽을 수 있습니다. 생성 이후에도 창작자가 개입할 자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Flow의 제작 기능)

저는 제작비가 낮아지는 효과도 여기서 보고 싶습니다. 같은 영화를 더 싸게 만드는 효과뿐 아니라, 포기했을 시도를 해볼 수 있게 하는 효과입니다.

실패했을 때 감당해야 할 비용이 줄어든다면, 설명하기 어려운 이야기나 아직 관객을 증명하지 못한 창작자에게 기회가 생길 수 있습니다. 대표님이 말씀하신 가장 사적인 이야기는 오히려 큰 제작비를 설득하기 어려운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에 새 도구가 표현의 기회를 준다면, 기술과 작가의 내면은 서로 반대편에 서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싸졌다고 반드시 더 과감해지지는 않습니다. 절약한 비용으로 더 많은 공식을 반복할 수도 있고, 무수한 결과물을 만드는 데 시간을 쓰느라 정작 한 작품을 깊이 다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생성 비용이 줄었다’는 사실만으로 좋은 창작이 늘어난다고 결론내릴 수는 없습니다.

제가 보고 싶은 것은 생성한 영상의 총량보다, 이전에는 완성되지 못했을 작품이 실제로 완성되는지입니다. 그리고 관객이 그 작품을 AI 시연으로 기억하는지, 한 사람의 작품으로 기억하는지입니다.

영화가 남는다고 넷플릭스가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대표님이 영화의 감동에 대해 옳다고 해서, 넷플릭스의 사업까지 자동으로 안전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AI가 감동적인 영화의 제작에 쓰일 수 있다고 해서, 넷플릭스가 곧 밀려나는 것도 아닙니다. 예술의 가치와 특정 기업의 경쟁력은 나눠 생각해야 합니다.

넷플릭스는 이미 새 도구를 받아들이는 쪽에 있습니다. 회사는 2026년 2분기 주주서한에서, 2026년 들어 약 300개 작품에 생성형 AI 작업 방식이 사용됐고 후반작업에 가장 많이 집중돼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약 300편을 AI가 통째로 만들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기존 제작 과정 안으로 기술이 들어가고 있다는 회사의 설명입니다. (넷플릭스 2026년 2분기 주주서한, 4~5쪽)

이 사실을 바탕으로 저는 서로 다른 경로를 상상하게 됩니다.

AI가 기존 창작자들의 표현력을 높이고 제작 부담을 줄이는 방향이라면, 넷플릭스 같은 사업자가 그 혜택을 가져갈 수도 있습니다. 좋은 창작자를 찾아 작품을 완성시키고 관객에게 전달하는 역할이 계속 중요하다면, 새 도구가 기존 플랫폼의 손에서도 강력하게 작동할 수 있습니다.

반면 훨씬 작은 팀이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만들고 관객과 직접 관계를 쌓을 수 있게 된다면, 제작 자본을 제공하는 대가로 작품과 창작자를 묶어두던 힘은 약해질 수 있습니다. 관객이 특정 플랫폼의 신작보다 특정 창작자의 다음 작품을 더 기다리게 되는 경우입니다.

콘텐츠가 많아질수록 작품을 발견하게 해주는 창구의 가치가 커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작의 문턱이 낮아지는 동시에 유통의 힘은 더 강해질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유리한지는 영상의 사실성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주의력에 관한 대표님의 말씀도 사업의 관점에서는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반드시 인생 최고의 영화가 되어야만 관객의 시간을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볍게 즐기는 콘텐츠가 늘어나는 경로와, 깊이 남는 작품이 새로운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경로는 동시에 열릴 수 있습니다. 영화의 감동이 대체되지 않아도, 사람들이 시간을 쓰는 방식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저는 미래의 관객이 모두 ‘나만을 위한 영화’를 원할 것이라고 확신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취향에 딱 맞는 것을 보고 싶을 때도 있지만, 다른 사람의 낯선 시선에 이끌리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친구와 같은 작품을 보고, 같은 장면에 대해 서로 다른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내가 좋아할 만한 것을 정확히 만들어주는 능력과, 내가 좋아하게 될 줄 몰랐던 것을 보여주는 능력 사이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후자의 자리가 상당히 오래 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기다리는 것은 새 도구를 익힌 사람입니다

이 대화를 AI 낙관론자가 영화인의 보수성을 반박한 이야기로 남기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대표님의 말씀이 제 질문을 더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무엇을 만들 수 있게 됐는지를 먼저 봤고, 대표님은 무엇 때문에 그것을 만들고 싶어지는지를 물으셨습니다. 투자자의 눈으로 놓치기 쉬운 부분입니다.

한편 저는 제 반론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눈에 잘 띄는 AI 결과물이 얕다는 인상에서, 앞으로 AI를 사용한 작품도 깊어질 수 없다는 결론으로 바로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인간이 중요한 이유가 많을수록, 그 인간이 새 도구를 어떻게 다룰지도 더 궁금해집니다.

좋은 배우와 감독, 편집자와 음악가가 필요하다는 말은 AI가 필요 없다는 말과 같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이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꿀지에 따라, 같은 도구에서도 다른 작품이 나올 수 있습니다. 때로는 AI를 쓰지 않는 선택이 가장 좋은 선택일 것입니다.

제가 기대하는 순간은 관객이 ‘AI가 만들었다니 대단하다’고 말하는 순간에서 조금 더 멀리 있습니다. 기술에 대한 감탄이 지나간 뒤에도 그 인물과 장면이 마음에 남는 순간입니다. AI라는 설명 없이도 한 편의 작품으로 다시 보고 싶어지는 순간입니다.

그런 작품이 언제, 누구에게서, 어떤 방식으로 나올지는 모르겠습니다. 실사와 생성 영상이 섞인 영화일 수도 있고, 아직 익숙한 이름이 없는 형식일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도구가 끝내 잘하지 못하는 영역이 남을 가능성도 열어두고 싶습니다.

다만 감동의 원천이 인간의 깊은 곳에 있다는 이유로,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표현 수단의 가능성까지 닫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표님이 말씀하신 장인의 깊이와 제가 기대하는 도구의 발전이 만나는 곳. 저는 그곳에서 나올 작품이 궁금합니다.

장인이 새 칼을 쥔다고 손맛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그 칼에 맞는 손맛을 익히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대화는 기억을 바탕으로 취지를 살려 재구성했습니다. 대화 이후의 해석과 전망은 필자의 생각입니다. 대화에 등장한 놀란 관련 설명은 직접 인용으로 옮기지 않았으며, 별도로 언급한 공개 인터뷰와 제작 사례에는 원문을 연결했습니다. 도구 제공사와 넷플릭스의 발표는 해당 회사의 설명으로, 작품의 예술성이나 향후 시장의 승자를 입증하는 자료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AI라는 새 도구가 장인의 손에 들어갈 때